다산 정약용 선생의 제자 1호인 황상 선생의 글방이있던 일속산방을 찾았다. 황상의 글방인 일속산방은 일찍이 다산이 일러준 글방 짓는 방법에 따라 산속에 지은 글방으로 제2의 다산초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평생을 다산의 가르침에 따라 글을 쓰며 자신만의 생활을 했던 곳으로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다산 큰아들 학연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역을 선택할 때는 모름지기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골라야 한다. 그러나 강을 낀 산은 시냇물을 낀 산만 못하며, 마을 입구에는 높은 암벽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눈이 시원하게 확트인 곳이라야 비로소 복지(福地)인 것이다. (중략) 방 안에는 서가 두 개를 놓고서, 1천 3~4백 권의 책을 꽂되《주역집해(周易集解)》ㆍ《모시소(毛詩疏)》ㆍ《삼례원위(三禮源委)》고서(古書)ㆍ명화(名畫)ㆍ산경(山經)ㆍ지지(地志) 등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출처 : 다산시문집 제14권 / 황상유인첩(黃裳幽人帖)에 제함)
황상은 다산 선생께서 모름지기 은둔하여 천명을 우러러 순응하며, 큰 길을 밟으며 평탄하게 걷고, 인간 본연의 덕성을 즐기며 화락하게 생활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받들어 일속산방을 짓고 살면서 평생을 보냈다.
그런 황상의 글방인 일속산방 주변은 현재 커다란 저수지로 변해 이전의 큰 골짜기와 마을 그리고 황상가족들이 살던 집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10여년 전만 해도 황상의 집터에 있던 감나무가 있어서 보존을 위해 노력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저수지물에 허물어져 유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한참을 걸으니 바위 하나가 보였다. 청광 선생은 이 바위를 나비 콧등처럼 불쑥 나와서 나비콧등 바위라고 한다며 이 바위에 얽힌 사연도 이야기 해주었다. 저수지 공사가 한창일 때 이 바위를 헐어서 공사 자재로 쓸려고 해서 절대로 못하게 해서 그나마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향토사학자 청광 선생님의 안내가 없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풀과 나무로 우거진 길이었다. 일행 모두가 나무가지를 꺾어내며 한참을 올라가니 아늑한 지형이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래된 일속산방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이 일속산방이었구나 하는 느낌에 소치 허련 선생이 남긴 일속산방도를 상상해보니 조금은 짐작이 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서 일행 모두가 주변을 정리하고 예를 갖추었다. 어딘지 모르게 반갑게 맞이하는 황상 선생의 포근한 모습을 떠올리며 모두가 둘러앉아 청강 선생의 즉석 특강으로 삼근계를 들었다. 다산이 제자인 황상에게 맨 처음 했던 말씀을 되새기며 일속산방의 옛 모습을 그려보았다. 제자 황상은 죽는 날까지 다산의 삼근계 통해서 제자로서의 업적을 남긴 일속산방의 200여 년 전 사연과 흔적들은 저수지 속 깊이 묻혀 버리고 잔잔하게 출렁이는 저수지 물결은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산의 고귀한 정신과 사상을 간직하며 제자의 본분을 다한 다산제자 1호 황상의 일속산방을 강진의 또 하나의 고귀한 문화유산으로 복원하여 제2의 다산초당으로 가꾸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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