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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channel><title>칼럼 게시판의 최근글</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link><description>칼럼 게시판에 올라온 최근글을 RSS 리더기로 볼 수 있습니다.</description><generator>GN Board RSS Generator</generator><item><title>시련과 고난을 긍정과 희망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며</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72&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긍정과 희망의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새해가 되면 매년 자신의 학문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했던 경험을 유배지 강진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amp;nbsp;&lt;/p&gt;&lt;p&gt;이 글을 통해 새해 우리의 목표를 계획하면서 긍정과 희망의 시간으로 채워보길 바랍니다. 비록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계획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선(善)을 추구하고 한 걸음씩 전진하려는 마음가짐이 변화를 이루는 힘이라고 강조한 다산 선생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희망의 2025년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해가 새로 바뀌었다.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번 새롭게&amp;nbsp; 하여야 한다. 나는 젊었을 때에 새해를 맞이할 적마다 반드시 그해의 공과(工課)를 미리 정하였는데,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책을 뽑아 적어야 하는가를 미리 정하여 놓은 뒤에 실행하였다. 간혹 몇 달 뒤에 이르러 사고가 발생해서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선(善)을 즐기고 앞으로 전진하려는 뜻만큼은 스스로 숨길 수 없었다.”&amp;nbsp;&lt;/p&gt;&lt;p&gt;-다산 정약용, 두 아들에게 부침 계해(1803, 순조 3년) 원일(元日)&lt;/p&gt;&lt;p&gt;&amp;nbsp;&lt;/p&gt;&lt;p&gt;유배를 당한 다산 선생에게 ‘폐족’이라는 한계는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시련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산은 이를 한탄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학문과 덕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amp;nbsp;&lt;/p&gt;&lt;p&gt;선생은 “폐족은 오직 벼슬길에만 꺼리는 자가 있을 뿐, 성인이 되고 진리를 통달한 선비가 되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폐족이라도 그 한계를 극복하여 오히려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amp;nbsp;&lt;/p&gt;&lt;p&gt;그리고 역사적 인물인 율곡 이이, 우담 정시한, 성호 이익 선생과 같이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난 선조들의 사례를 들어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아 후대에 영감을 준 인물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amp;nbsp;&lt;/p&gt;&lt;p&gt;또 다산 선생이 강조한 것은 ‘외모와 예절’입니다. 단정하고 겸손한 자세, 존중과 성실함은 학문과 인격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올바른 태도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lt;/p&gt;&lt;p&gt;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 속에서 세계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 세계 속에서 문화와 기술로 인정받는 K-브랜드의 탄생,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은 모두 우리가 함께 겪어온 시련 속에서 피어난 결실입니다.&amp;nbsp;&lt;/p&gt;&lt;p&gt;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고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확실성,&amp;nbsp; 급변하는 기술 환경,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의 이해 부족,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 등 우리 모두가 체감하는 현실의 무게는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amp;nbsp;&lt;/p&gt;&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련을 긍정과 희망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나무를 더 뿌리 깊게 하듯, 시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사를 써왔습니다.&amp;nbsp;&lt;/p&gt;&lt;p&gt;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고, 2016년 광화문 촛불로 민주주의를 지켰고, 2020년 팬데믹 속에서도 공동체 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습니다.&amp;nbsp;&lt;/p&gt;&lt;p&gt;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2025년에 또 다른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리라 확신합니다. “바람이 강할수록 연은 더 높이 날아 오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연대와 긍정의 힘으로 모두가 더 높이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갑시다. 그 주인은 바로 우리입니다.&amp;nbsp;&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4-12-31 10:43:36</pubDate></item><item><title>따뜻한 연말, 따뜻한 관심</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71&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엊그제 2024년 맞이한 것 같은데 어느덧 2024년 12월 끝자락에 서 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추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12월은 각종 모임으로 가득할 것이다.&amp;nbsp;&lt;/p&gt;&lt;p&gt;연말이 되면 잦은 술자리로 관계성 범죄 또한 증가하게 된다. 관계성 범죄란 가정폭력, 교제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등과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미 맺어진 일정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특성이 있는 범죄를 뜻한다.&amp;nbsp;&lt;/p&gt;&lt;p&gt;다른 범죄와 달리 관계성 범죄는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재발 위험성 및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lt;/p&gt;&lt;p&gt;따뜻한 연말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피해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관계성 범죄 특성상 피해자는 범죄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amp;nbsp;&lt;/p&gt;&lt;p&gt;‘평소에는 그러지 않는데 술만 마시면 폭행, 폭언해요’ 또는 ‘가족이니까, 사귀는 사이니까 제가 참아야 해요’라고 하며 가해자들을 보호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피해자가 참는다고 해서 가해자들의 위험한 행동은 줄어들지 않는다.&amp;nbsp;&lt;/p&gt;&lt;p&gt;오히려 피해자들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본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ㆍ연인을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둘째, 우리 모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자. 관계성 범죄는 가ㆍ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우리 주변에 또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amp;nbsp;&lt;/p&gt;&lt;p&gt;특히 다문화 가정의 경우 특성상 피해를 당해도 범죄에 해당되는 사실을 모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범죄에 지속적ㆍ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amp;nbsp;&lt;/p&gt;&lt;p&gt;이주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지역 내 주요시설에 각 나라별 언어로 제작된 관계성 범죄 설명 팜플렛을 배치하고 주기적인 상담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지 잘 살펴봐야 한다.&lt;/p&gt;&lt;p&gt;지금 이 순간에도 관계성 범죄로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024년은 곧 끝나지만 이들의 고통은 우리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없다면 2025년에도 지속될 것이다.&amp;nbsp;&lt;/p&gt;&lt;p&gt;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용기를 내서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자. 다가오는 2025년, 개인의 목표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ㆍ이웃을 위한 목표를 세워 보는 건 어떨까?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즐거운 연말을 보내자.&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4-12-31 10:42:45</pubDate></item><item><title>연말, 존엄한 삶을 준비하는 시간</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70&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연말은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기이다.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이 순간, 우리는 자신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하기 위한 선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amp;nbsp;&lt;/p&gt;&lt;p&gt;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임종 과정을 대비해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문서로 작성하는 것을 의미한다.&amp;nbsp;&lt;/p&gt;&lt;p&gt;이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며,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되더라도 본인의 선택이 존중되도록 한다.&amp;nbsp;&lt;/p&gt;&lt;p&gt;이 과정은 삶의 존엄성을 지키고 가족에게도 불필요한 의료적 부담을 덜어주는 중요한 선택이다. 간혹 사람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안락사와 혼동하여 주저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amp;nbsp;&lt;/p&gt;&lt;p&gt;안락사는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덜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명을 종결하는 행위로,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선택을 통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lt;/p&gt;&lt;p&gt;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가까운 등록기관에 신분증 지참 후 상담을 통해 작성할 수 있다. 작성 후에도 본인의 의사가 바뀌면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 강진군은 강진군보건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완도강진지사에서 등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amp;nbsp;&lt;/p&gt;&lt;p&gt;현재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으며, 등록기관은 600곳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새해를 앞둔 연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특별한 선택이 될 수 있다.&amp;nbsp;&lt;/p&gt;&lt;p&gt;존엄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가족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4-12-31 10:42:01</pubDate></item><item><title>다산(茶山)의 삶에 애환이 서린 충주 하담!</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9&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5/741fdf4e4e7f9df0a90a4a48184375f0_1684908389_63.jpg&quot; title=&quot;741fdf4e4e7f9df0a90a4a48184375f0_1684908389_63.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lt;br style=&quot;clear:both;&quot;&gt;艸石 진규동 박사&amp;nbsp;&lt;/p&gt;&lt;p&gt;다산미래원 원장&amp;nbsp;&lt;/p&gt;&lt;p&gt;다산의 2,500여 수의 시 가운데 충주 하담(荷潭)과 관련된 시가 여러 편 있다. 그만큼 그곳에 자주 오가며 그 때 그 때의 심정을 시에 담아 놓은 다산의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amp;nbsp;&lt;/p&gt;&lt;p&gt;특히, 현재의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에 위치한 모현정(慕賢亭) 인근에는 다산의 조부 정지해의 묘가 있었고, 어머니 해남 윤씨 묘도 이곳에 있었다.(영조 46년,1770). 그리고 아버지 정재원도 사망(정조 16년,1792) 후 어머니 묘소에 합장되었고, 다산의 둘째 형 정약전 부부도 이곳에 묻혔다.&amp;nbsp;&lt;/p&gt;&lt;p&gt;그래서 다산은 과거에 급제할 때, 유배를 갈 때, 해배되어 돌아 왔을 때마다 선영에 들려 어머니와 선조들께 인사를 드렸던 곳이다. 그 흔적들이 다산시문집에 남아 있다.&amp;nbsp;&lt;/p&gt;&lt;p&gt;그러나 지금은 30여 년 전 천주교 천진암 성지로 이장되어 이곳에는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amp;nbsp;&amp;nbsp;&lt;/p&gt;&lt;p&gt;다산의 시 가운데 하담과 관련된 시는 1777년 10월 16세 때 아버지가 전라도 화순 현감으로 부임하는 길에 동행하며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이곳을 찾아 쓴 시가 있다.&amp;nbsp;&lt;/p&gt;&lt;p&gt;아홉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후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열여섯 살에 장가든 어른이 되어 양반의 갓을 쓰고 묘소를 찾았을 때 쓴 시이다. 그 때의 심경을 다산은 다음과 같이&amp;nbsp; 시로 그려냈다.&lt;/p&gt;&lt;p&gt;&amp;nbsp;&lt;/p&gt;&lt;p&gt;서글퍼라 서쪽으로 돌아온 배&lt;/p&gt;&lt;p&gt;어느새 7년 세월 까마득해라.&lt;/p&gt;&lt;p&gt;이제는 검은 관을 드높이 쓰고&lt;/p&gt;&lt;p&gt;화려한 일산까지 펄펄 날리네.&lt;/p&gt;&lt;p&gt;세월이 지난 풀 위엔 첫눈이 얽혔고&lt;/p&gt;&lt;p&gt;저녁 연기는 삼나무를 감싸고 있네.&lt;/p&gt;&lt;p&gt;둥지에 든 새들이 짹짹거리니&lt;/p&gt;&lt;p&gt;흐르는 눈물방울 어찌 거두리.&lt;/p&gt;&lt;p&gt;- 「하담에 머물다」(宿荷潭)&lt;/p&gt;&lt;p&gt;&amp;nbsp;&lt;/p&gt;&lt;p&gt;그리고 1783년 정조 7년 다산의 나이 22세 때, 진사과에 합격하여 합격 소식을 알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어머니께 합격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반겨줄 어머니는 말이 없으니 우뚝 서서 눈물만 흘린다는 시에서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다산의 모습이 그려진 「하담에 도착해서」(到荷潭)라는 시도 있다.&amp;nbsp;&lt;/p&gt;&lt;p&gt;또, 1789년 1월 27일 정조 13년 다산의 나이 28세 때, 과거에 급제했을 때 마침 아버지가 울산 도호부사로 발령이 나서 아버지를 충주까지 배웅했다. 그 때 어머니 묘소에서 과거에 합격한 소식을 보고 드리면서 쓴 「하담에 도착해서」(次荷潭)라는 시도 있다.&amp;nbsp;&amp;nbsp;&lt;/p&gt;&lt;p&gt;그리고 1801년 3월 2일 다산의 나이 40세 때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정순왕후의 천주교 금지령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 가는 길에 이곳에 도착하여 부모님 묘소에 성묘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때 지은 「하담의 이별」(荷潭別)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lt;/p&gt;&lt;p&gt;&amp;nbsp;&lt;/p&gt;&lt;p&gt;아버님이여 아시나요 모르시나요&lt;/p&gt;&lt;p&gt;어머님께선 아십니까 모르십니까.&lt;/p&gt;&lt;p&gt;집안이 갑자기 무너져버려&lt;/p&gt;&lt;p&gt;죽고 살아남는 이 지경이 되었어요.&lt;/p&gt;&lt;p&gt;이 목숨 비록 부지는 했지만&lt;/p&gt;&lt;p&gt;몸뚱이 아깝게도 이미 이지러졌습니다.&lt;/p&gt;&lt;p&gt;아이들 낳아 부모님 기뻐하시며&lt;/p&gt;&lt;p&gt;부지런히 붙잡아 기르셨지요.&lt;/p&gt;&lt;p&gt;하늘 같은 그 은혜 꼭 갚으려 했더니&lt;/p&gt;&lt;p&gt;깎아버림 당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lt;/p&gt;&lt;p&gt;이 세상 사람 대부분&lt;/p&gt;&lt;p&gt;다시는 아들 낳았다 기뻐하지 않겠네요.&lt;/p&gt;&lt;p&gt;- 「하담의 이별」(荷潭別)&lt;/p&gt;&lt;p&gt;&amp;nbsp;&lt;/p&gt;&lt;p&gt;유배를 떠나며 부모님께 못다 한 자식의 도리를 하소연 하며 쓴 시이다. 아들 낳았다고 기뻐하신 부모님께 하늘같은 그 은혜 꼭 갚으려 했더니만 불효한 마음을 시로 담아낸 것이다.&amp;nbsp;&lt;/p&gt;&lt;p&gt;다산의 애환이 서린 충주 하담 모현정 앞 남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5월의 푸르른 나뭇가지에 새들은 여전히 푸르름을 노래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다산의 시를 통해 희노애락은 물론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시간이 되길&amp;nbsp; 기대한다.&amp;nbsp;&amp;nbsp;&lt;/p&gt;&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5/741fdf4e4e7f9df0a90a4a48184375f0_1684908721_85.jpg&quot; title=&quot;741fdf4e4e7f9df0a90a4a48184375f0_1684908721_85.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lt;br style=&quot;clear:both;&quot;&gt;&amp;nbsp;&lt;/p&gt;&lt;div&gt;&lt;br&gt;&lt;/div&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3-05-24 15:12:13</pubDate></item><item><title>진성리더십아카데미 진성리더를 찾아서</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8&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5/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761_86.jpg&quot; title=&quot;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761_86.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진성리더십아카데미 “진성리더를 찾아서” 9인의 도반들은 2023년 4월 21일부터 22일까지&amp;nbsp; 1박2일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강진을 찾았다.&lt;/p&gt;&lt;p&gt;과거 속에 진성리더의 모습 속에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해보고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보자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진성도반들의 여정은 즐거움과 설레임과 호기심 그 자체였다.&amp;nbsp;&lt;/p&gt;&lt;p&gt;일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나는 용기는 진성리더들이 “뭐가&amp;nbsp; &amp;nbsp;중헌디?”라는 질문에 자문자답한 결과이다. 오고가는 차 속에서 이루어진 일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미래 방향에 대한 탐색 또한 이 여정이 아니면 도전히 상상 할 수 없는 또 다른 진성도반들의 자기인식의 과정이었다.&lt;/p&gt;&lt;p&gt;강진은 예부터 한양과 멀리 떨어진 땅끝 마을로 정치적인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곳에서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 유배지 강진이 알려진 것은 유홍준 교수의 남도답사 1번지를 통해서다.&amp;nbsp;&lt;/p&gt;&lt;p&gt;나 역시 다산박물관에서 다산교육전문관으로 근무하기 전에는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다. 2년간 근무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amp;nbsp; 천혜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푸근한 엄마의 품속 같은 느낌을 받았다.&amp;nbsp;&lt;/p&gt;&lt;p&gt;실제 다산의 글 속에서도 다산이 전라도에서 다섯해 남짓 유배 살이 하고 있을 때 북쪽에 사는 사람이 강진에 대한 편견을 갖고 물었을 때 다산은 몸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amp;nbsp; “강진사람들은 인심이 후하여 벼 베기가 끝나면 농토가 없는 백성들이 이웃의 농토를 경작하게 해 마치 자기 전답인양 보리를 심어 거두게 한다”며 강진을 인심 좋은 고을로 이야기 하고 있다.&amp;nbsp;&lt;/p&gt;&lt;p&gt;뿐만아니라 1980년 대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인 &amp;lt;르몽드&amp;gt;지 편집국장이 한국을 여행하고 쓴 기고문에서 ‘한국의 세 가지 보물’로 맑은 가을 하늘과 고려청자의&amp;nbsp; 비취빛, 다산 정약용의 정신을 꼽았다고 한다.&amp;nbsp;&lt;/p&gt;&lt;p&gt;강진이 한국의 세가지 보물을 다 갖추고 있는 고장이다. 그 가운데서 18년 유배생활 속에서 600여권의 책속에 함축된 다산정신이 얼마나 보물과도 같은지를 기자의 눈에는 돋보였던 것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다산정신이란 본인이 쓴 논문을 인용하면 “다산학을 기반으로 주인정신과 위국애민에서 드러난 소통, 청렴, 공정, 탐구, 창조, 개혁”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산정신과 사상은 새로운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인간중심주의의 정신과 영혼과 마음과 일맥상통하고 있다.&amp;nbsp;&lt;/p&gt;&lt;p&gt;다산은 진실로 백성이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며 늘 열린 마음으로 백성을&amp;nbsp; 사랑한 정치가, 사상가, 학자, 과학자였다. 다산은 유네스코가 2012년 8월 3일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에 유네스코 기념인물로 선정한 최초의 한국인이다.&amp;nbsp;&lt;/p&gt;&lt;p&gt;다산은 이처럼 200여년이 지났지만 세계적인 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의 실학사상과 정신이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위당 정인보는 “다산선생 한 사람에 대한 연구는 조선사 연구요, 조선 근대 사상사의&amp;nbsp; 연구요, 조선 심혼의 명예내지 온 조선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구“라고 하였다. 또, 시인 김남주는 ”조선의 자랑, 한 시대의 거봉, 조국의 별“이라고 하였다.&amp;nbsp;&lt;/p&gt;&lt;p&gt;실제 그의 방대한 저술은 빈궁한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소수 지배계급의 지독한 착취와 압제로 인하여 노예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비참한 현상을 철저히 고발하며 홀연히 촛불을 든 것이다. 뿐만아니라 다산은 탁월한 실학자로서 봉건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봉건적 세계관과 사회개혁 정신을 소유한 개혁가였다.&amp;nbsp;&lt;/p&gt;&lt;p&gt;이러한 다산의 평가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듯이 그의 삶의 여정과 정신은 진성리더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진성리더를 찾아서”가 장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탐방하는 이유가 진성인의 삶은 자신의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한 토양이라는 존재구속성을 받아들이고 이 존재구속성이라는 토양을 초월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이런 측면에서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자신을 묻고 그곳에서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서 자신의 존재구속성을 초월하여 6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18명의 제자를 육성하고 실학을 집대성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lt;/p&gt;&lt;p&gt;&amp;nbsp;&lt;/p&gt;&lt;p&gt;다산은 유배생활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의 씨앗을 심으면서 나라다운 나라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자신만의 꿈나무를 키웠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이라는 품성의 꿈나무를 길러내었다.&amp;nbsp;&lt;/p&gt;&lt;p&gt;그 씨앗인 600여권의 저술을 통해 길러낸 탄생, 각성, 고난과 길러짐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씨앗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자신만의 고유한 품성을 만들어내는 초월의 역사를 썼던 것이다.&amp;nbsp;&lt;/p&gt;&lt;p&gt;백성들이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비판적 사고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아실현과 자기 이해를 통해 보다 사람다운 삶을 가능케 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산의 주인정신은 다산정신의 핵심으로 진성리더의 핵심인 진정성이란 바로 자신이 주인으로 주체성을 갖게 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amp;nbsp;&lt;/p&gt;&lt;p&gt;이번 여정을 통해 다산정신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amp;nbsp;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amp;nbsp;&lt;/p&gt;&lt;p&gt;절대적 가치 상실의 시대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이 절실 한 때라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다산의 위대한 사상과 철학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일 역시 이 시대 진성리더들의 역할과 소명이라는 것을 새삼 다짐해보는 소중한 여정이었다.&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3-05-08 17:16:18</pubDate></item><item><title>진정한 지식인과 관료로서 책무를 다한, 다산(茶山)</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7&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5/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661_13.jpg&quot; title=&quot;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661_13.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강진우리신문 창간 13주년을 축하한다.&lt;/p&gt;&lt;p&gt;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때 강진우리신문의 창간은&amp;nbsp; 강진은 물론 지역사회 언론으로서 역할과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런 때 200여 년 전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글을 통해서 언론은 물론&amp;nbsp; 이 시대 지식인과 공직자들 역시 그의 역할과 사명을 생각해보는 시간이&amp;nbsp; 되길 바란다.&lt;/p&gt;&lt;p&gt;“잘 생각해보면 털끝만큼 작은 일이라도 병폐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어찌 충신과 지사가 팔짱 끼고 방관할 수 있는 일인가?” - 다산 정약용, 경세유표 서문&lt;/p&gt;&lt;p&gt;다산 선생이 쓴 600여권의 책 중에 “경세유표” 서문에 나온 글이다. 이것은 왜 이 책을 썼는가에 대한 핵심 내용이다. 다산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핵심 일꾼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으로 정치적 탄압에 휘말려 강진으로 유배를 당하였다.&amp;nbsp;&lt;/p&gt;&lt;p&gt;생각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유배는 처자식과의 이별은 물론 언제 만날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처절한 형벌이었다.&lt;/p&gt;&lt;p&gt;하지만 18년 유배 생활 속에서도 다산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니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오직 나라와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위국애민의 정신으로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4서6경을 정리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1표2서 즉, 국가개혁서인&amp;nbsp; “경세유표”, 목민관들이 어떻게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것인가를 써 놓은 복무지침서인 “목민심서”, 백성들의 인명을 존중하도록 한 형법 매뉴얼인 “흠흠신서”를 저술하였다.&amp;nbsp;&lt;/p&gt;&lt;p&gt;다산은 조선의 한 관료이자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공직자로서 못다 한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18년의 유배 생활 속에서도 600여권의 책을 저술 하였다. 이것은 다산이 과거에 합격하면서 쓴 시(詩) “정월 스무이렛날 문과에 급제하여 희정당에서 임금을 뵙고 물러나와 지은 시”의 한구절 “무능해 임무 수행 어렵겠지만(鈍拙難充使), 공정과 청렴으로 충성 바치리(公廉願效誠)”라고 한 부분에서 그의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amp;nbsp;&lt;/p&gt;&lt;p&gt;다산은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유배지에서 조차 어떻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관료이자 진정한 지식인이었다.&amp;nbsp;&amp;nbsp;&lt;/p&gt;&lt;p&gt;21세기는 불확실한 초연결, 초스피드의 시대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국내외적으로 동시 다발로 발생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경제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기후 변화 및 공중 보건 위기를 포함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리 겉보기에는 미미한 문제라 할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예측불가의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지도자들은 국가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백성들의 복지를 최우선시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다산이 보여준 것처럼, 무엇보다 도전과 역경 속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는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익숙치 않은 개혁을 실천하는 일에는 어렵게 만드는 관료적 장애물, 정치적 반대 또는 기타 많은 제약이 수반되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등 시회 전반적으로 병폐가 아닌 것이 없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영간 이념의 논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보다 오직 짜여진 그물망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라전체가 검찰 공화국으로 변하고 있다. 갈수록 급변하는 불확실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책임있는 리더들이 절실하다.&amp;nbsp;&lt;/p&gt;&lt;p&gt;200여 년 전 다산이 유언장을 쓰듯이 갈급한 마음으로 유배지에서 나라다운&amp;nbsp; 나라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써 내려간 “경세유표”의 서문이 진정한 지식인과 지도자들의 진정한 소명의식을 밝히는 등불이 되길 바란다.&amp;nbsp; &amp;nbsp;&lt;/p&gt;&lt;p&gt;창간 13주년을 맞이한 강진우리신문 역시 공정한 정론지로서 책무를 다하여 강진군민의 삶은 물론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사랑받는 언론사가 되길 기대한다.&amp;nbsp;&lt;/p&gt;&lt;div&gt;&lt;br&gt;&lt;/div&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3-05-08 17:14:39</pubDate></item><item><title>다산(茶山), 법이란 나라의 명령이다! </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6&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5/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542_96.jpg&quot; title=&quot;5175541543cfdf5f3445c4a332321694_1683533542_96.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법이란 나라의 명령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라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셈이다. 그 나라 국민으로서 어찌 감히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굳게 지키며 굽히지도 빼앗지도 말라. 문득 욕심이 움직이거든 물러앉아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라.&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대체로 국법이 금하는 것과 형법에 실린 것들은 조심조심 두려워하면서 감히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돈에 유혹되지도 말고 협박에 굴하지도 말라. 그것이 지켜내는 방법인 것이다. 비록 상사의 독촉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해독이 없는 법은 준수하면서 없애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지방 관례는 그 지방의 법인 것이다.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거든 이를 다듬어서 쓰도록 하라.”&lt;/p&gt;&lt;p&gt;-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봉공육조 수법(奉公六條 守法)&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것은 일찍이 200여 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법이 무엇이고, 법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민심서를 통해서 전해준 지혜이다. 법은 사회 질서와 정의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일련의 규칙과 규정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히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lt;/p&gt;&lt;p&gt;민법은 계약과 재산 그리고 가정에 관련한 법으로 개인, 가족 및 기업의 행위를 규율하는 법적 규칙이고, 형법은 절도, 폭행, 살인과 같은 사회에 대한 범죄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법률을 위반하면 벌금, 구금, 심지어 사형까지도 당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책임감 있는 시민이라면 자신에게 합당한지 여부에 관계없이 민법과 형법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금전이나 위협으로 법을 어기도록 유혹해서는 안 되며, 항상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법을 준수하는 것이 모든 시민의 기본적인 책임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그것은 사회 질서와 정의를 보장하고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어가는 초석이다. 그러나 국민을 보호하고 복무해야 할 사람들이 위법행위나 직권남용을 할 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은 자명하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그러한 행동은 사회 질서의 붕괴와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법을 수호하고 그들이 섬겨야 할 시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법을 위반하거나 위법 행위에 연루된 경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하지만 이를 감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기관마저도 그렇치 못할 때 이를 감시해야 할 곳은 언론이다. 언론은 여론을 통해 감시 그룹과 같은 역할을 통해 법을 위반하거나 위법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 역시 깨어 있는 시민으로 지도자와 공직자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위법 행위나 권력 남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것은 이미 200여 년 전 다산 선생이 황해도 곡산 부사시절 이계심 사건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에게 내린 명판결문 즉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와 같은 사람 있어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 백성을 위해 그들의 원통함을 폈으니 천금을 얻을 수 있을지 언정 너와 같은&amp;nbsp; 사람은 얻기가 어려운 일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 한다”를 통해 깨시민의 본보기를&amp;nbsp;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국민을 위한다는 공직자는 말할 것도 없다. 공복으로서 국민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책임을 다하고 법치를 강화하며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런 측면에서 “법이란 나라의 명령이다. 비록 상사의 독촉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는 200여 년 전 다산의 외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절히 울리고 있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 울림이 공직자는 물론 이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모두의 가슴 속 깊이 울릴 때 다산이 꿈꾼 “나라다운 나라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이 구현될 것이라 확신한다.&amp;nbsp;&amp;nbsp;&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3-05-08 17:12:41</pubDate></item><item><title>다산(茶山), 백성들 앞에 나설 때!</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5&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302/d858b783551ab2eacf36ebaa4dcaf3f1_1675990117_8.jpg&quot; title=&quot;d858b783551ab2eacf36ebaa4dcaf3f1_1675990117_8.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절도 있게 행동하고 의복은 단정하게 입으며, 장중한 태도로 백성을 대하는 것이 옛날 사람들의 법도였던 것이다. 틈이 나거든 정신을 가다듬고 안민의 방책을 생각하되 지성껏 최선을 다하라. 말은 많이 하지 말고 불쑥 성을 내지도 말라.&amp;nbsp;&lt;/p&gt;&lt;p&gt;아랫사람에게 너그러우면 순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이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드리되 공경할 줄 모른다면 난들 그를 어떻게 여겨야 할지!」하였고, 「너그러우면 대중을 얻게 된다.」고도 하였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관청에서의 체모는 되도록 엄숙해야 하니, 그의 곁에 쓸데없는 사람이 있어도 안 된다. 「군자가 묵직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하였으니, 백성을 위하는 사람은 불가불 신중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술도 끊고 여색도 멀리하며, 노래와 춤도 물리치고, 단정하고 엄숙하되 제사를 모시듯 하며, 행여나 유흥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히거나 버려두는 일이 없도록 하라.”(생략) - 다산 목민심서, 율기육조律己六條 - 칙궁飭躬&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200여 년 전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관의&amp;nbsp; 복무지침서인 목민심서에 나온 글로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 진리이다.&amp;nbsp;&lt;/p&gt;&lt;p&gt;자신의 가정을 먼저 다스릴 수 없으면 나라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은 거듭 입증된 사실이다.&amp;nbsp;&lt;/p&gt;&lt;p&gt;이 생각은 논리와 이성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감에도&amp;nbsp; 뿌리를 두고 있다. 집안의 혼란조차 통제할 수 없는 지도자를 상상해 보자. 그들이 어떻게 국가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반면에 강하고 규율 있는 가정을 가진 리더는 공감과 이해심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다.&amp;nbsp;&lt;/p&gt;&lt;p&gt;그들은 명확한 규칙을 설정하고&amp;nbsp; 일관되게 그것에 중요성을 이해하고 검소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가정 내에서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튼튼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임과 존중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 가정 내에서 조화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 우리나라의 미래 지도자를 형성할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다.&lt;/p&gt;&lt;p&gt;&amp;nbsp;&lt;/p&gt;&lt;p&gt;그렇다면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어떤가?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들 앞에 나설 때 200여 년 전 다산이 이야기 한 것처럼 과연 떳떳하게 백성들 앞에 나서서 공직자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amp;nbsp;&lt;/p&gt;&lt;p&gt;절도 있게 행동하고 의복은 단정하게 입으며, 장중한 태도로 백성을 대하고, 틈이 나면 정신을 가다듬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생각하되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한 것을 지키고 있는가?&amp;nbsp;&lt;/p&gt;&lt;p&gt;그리고 말은 많이 하지 말고 불쑥 성을 내지도 말라며 아랫사람에게 너그러우면 순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amp;nbsp;&lt;/p&gt;&lt;p&gt;어쩌면 이렇게 다산 선생은 지금의 현실을 봐라보면서 이야기 하듯이 세밀하게 써 놓았는지 고개가 숙여진다.&amp;nbsp;&lt;/p&gt;&lt;p&gt;그만큼 다산은 비록 200여 년 전이었지만 공직자 들이 최소한 갖추어야 할 마음과 자세를 글로 엮어서 오늘날 까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지혜이다.&amp;nbsp;&lt;/p&gt;&lt;p&gt;세상은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으로 백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지러운 세상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이럴수록 정치는 백성을 위한 정치여야하고 지도자들은 국민들 앞에 나설 때는 국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위한 진정한 마음과 자세로 나서야 한다.&amp;nbsp;&lt;/p&gt;&lt;p&gt;그것이 정치 지도자이며 국민을 위한 정치이다. 그러므로 정치지도자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국민들은 국민의 자리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서로를 돌아보고 우리나라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길이 어떤 길인가 우리의 몫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때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국가를 위해 최고의 우리 자신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책임이다.&amp;nbsp;&amp;nbsp;&lt;/p&gt;&lt;p&gt;특히, 정치지도자들은 다산의 지혜를 거울삼아 국민들 앞에 나설 때는 보다 절도 있게, 단정하게, 장중한 태도로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한 지도자로 우리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일꾼이 되길 기대한다.&amp;nbsp;&amp;nbsp;&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3-02-10 09:49:32</pubDate></item><item><title>흠흠(欽欽)”법(法)을 알고 남용치 마라! </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4&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211/08dc1c292fa607c046cf503730f4c8f9_1668387946_57.jpg&quot; title=&quot;08dc1c292fa607c046cf503730f4c8f9_1668387946_57.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200여 년 전 다산 선생의 글을 통해서&amp;nbsp; &amp;nbsp;선생이 얼마나 백성들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했는지 그의 대표 저서인 흠흠신서 서문을 통해 작금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한다.&lt;/p&gt;&lt;p&gt;“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amp;nbsp;&lt;/p&gt;&lt;p&gt;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amp;nbsp; 재물을 얻고 부인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한 절규의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제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amp;nbsp;&lt;/p&gt;&lt;p&gt;인명에 관한 범죄인 옥사(獄事)는 모든 군현(郡縣)에서 항상 일어나는 것이고 지방관이 항상 만나는 일인데도, 실상을 조사하는 것이 항상 엉성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이 항상 잘못된다. 옛날 정조 시대 때는 감사(監司)와 수령 등이 항상 이것 때문에 배척을 당했으므로, 차츰 경계하여 근신하게 되었다.&amp;nbsp;&lt;/p&gt;&lt;p&gt;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다시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서 억울한 옥사가 많아졌다.&lt;/p&gt;&lt;p&gt;내가 목민에 관한 말을 수집하고 나서, 인명에 대해서는‘이는 마땅히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어야겠다.’하고, 드디어 이 책을 별도로 편찬하였다. 경서(經書)의 해설인 훈설(訓說)을 머리에 실어서 정밀한 뜻을 밝히고, 다음에 역사적 자취를 실어서 옛날의 관례를 나타내었으니, 이것이 경사지요(經史之要)로서 3권이다.&amp;nbsp;&lt;/p&gt;&lt;p&gt;다음에는 비판하고 자세히 논박한 말을 실어서 당시의 법식을 살폈으니, 이것이 비상지준(批詳之雋)으로 5권이다. 다음에는 청(淸) 나라 사람이 죄를 헤아려 형벌을 정한 의단(擬斷)의 사례를 실어서 차등을 분별하였으니, 이것이 의율지차(擬律之差)로 4권이다.&amp;nbsp;&lt;/p&gt;&lt;p&gt;다음에는 선조(先朝) 때 각 군현의 문답안(公案) 중에서 문사(文詞)와 논리가 비루하고 속된 것은 그 뜻에 따라 윤색하고, 형조의 의론과 왕의 판결은 삼가 그대로 기록하되 간간이 내 의견을 덧붙여서 천명하였으니, 이것이 상형지의(祥刑之議)로 15권이다.&amp;nbsp;&lt;/p&gt;&lt;p&gt;전에 황해도 지방의 군읍에 있을 적에 왕명을 받들어 옥사를 다스렸고, 들어와서 형조 참의가 되어 또 이 일을 맡았었다. 그리고 유배 때 때때로 옥사의 정상을 들으면 또한 장난삼아 가상적으로 옥사를 논하고 죄를 정해 보았는데, 변변치 못한 나의 이 글을 끝에 붙였으니, 이것이 전발지사(剪跋之詞)로 3권이다. 이들이 모두 30권으로,《흠흠신서(欽欽新書)》라 이름하였다.&amp;nbsp;&lt;/p&gt;&lt;p&gt;내용이 자잘하고 잡스러워서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일을 당한 이는 그래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중략)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amp;nbsp;&lt;/p&gt;&lt;p&gt;삼가고 삼가는(欽欽)것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기 때문이다.“ - 다산시문집 제12권 / 서(序) -&lt;/p&gt;&lt;p&gt;200여 년 전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이 모두 목민관에 의해 행사되던 시절, 다산 선생은 백성들이 얼마나 탄압을 받고 인명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직접 민생현장에서 확인하였다.&amp;nbsp;&lt;/p&gt;&lt;p&gt;그래서 목민심서를 쓰면서 별책으로 인명을 다루는 법과 형벌에 대해서 상세히 매뉴얼을 만든 것이라고 흠흠신서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amp;nbsp;&lt;/p&gt;&lt;p&gt;그만큼 선생은 백성들의 생명은 고귀하고&amp;nbsp; 소중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하물며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울 만큼 수많은 사건 사고들로 인명존중 사상은 사라져가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amp;nbsp;&lt;/p&gt;&lt;p&gt;뿐만아니라&amp;nbsp; 법을 다루는 공권력 역시 다산 선생께서 이야기 한 흠흠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공권력이 남용되고 불공정하게 집행되어 사회적 비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amp;nbsp; &amp;nbsp;&amp;nbsp;&lt;/p&gt;&lt;p&gt;따라서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amp;nbsp;&lt;/p&gt;&lt;p&gt;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한 절규의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제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라는 다산 선생의 숭고하고 고귀한 인명 존중 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라 생각한다.&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2-11-14 10:06:03</pubDate></item><item><title>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기본 “거가사본(居家四本)”</title><link>http://gjuri.com/bbs/?tbl=column&amp;mode=VIEW&amp;num=63&amp;category=</link><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gjuri.com/data/editor/2210/b4c2f06ba113af65f7d0826912ca3bab_1666228639_72.jpg&quot; title=&quot;b4c2f06ba113af65f7d0826912ca3bab_1666228639_72.jpg&quot; style=&quot;max-width:100%; height:auto;&quot;&gt;&amp;nbsp;&lt;/p&gt;&lt;p&gt;다산은 유배 18년 자식에 대한 교육은 철저하였다. 왜냐면 죄인의 자식으로 낙인찍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낙담하고 어긋날까봐 노심초사하였다. 그래서 비록 땅끝 멀리 전라도 강진에 떨어져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었으나&amp;nbsp; 편지를 통해서 가르치고, 격려하고, 엄하게 꾸중을 하면서 원격 교육을 실시하였다.&amp;nbsp;&lt;/p&gt;&lt;p&gt;그는 냉철한 학자이기 전에 자식 때문에 조바심 내던 애비였고, 망해가는 집안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가장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식들이 어떻게 해야 집안을 일으켜 세워 죄인 집안이라는 누명을 벗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지도 하였다. 그 가르침 중에 하나가 바로 다산이 자식들에게 집안을 세우도록 한 “거가사본(居家四本)!”이다.&lt;/p&gt;&lt;p&gt;&amp;nbsp;&lt;/p&gt;&lt;p&gt;주자는 “부드럽고 온순한 것(和順화순)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齊家제가) 근본이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勤儉근검) 집안을 다스리는(治家치가) 근본이고, 독서(讀書)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起家기가) 근본이며,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은(順理순리)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保家보가) 근본이다.”라고 했다.&amp;nbsp;&lt;/p&gt;&lt;p&gt;이것이 바로 집안을 다스리는(居家) 네 가지 근본이다.“ (중략) 효도와 우애, 자애 그리고 남편은 부드럽고 아내는 순종하며, 일가친척과 화목하게 지내고, 집안의 하인들을 잘 다스리는 일 등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齊家)’의&amp;nbsp; &amp;nbsp;근본에 넣어야 한다.&amp;nbsp;&lt;/p&gt;&lt;p&gt;밭 갈고, 길쌈하는 법, 의복과 음식에 관한 가르침과 경계할 일, 농사짓고 가축 기르는 방법 등 전원생활에 관련된 말은 집안을 다스리는 ‘치가(治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뜻을 세워 학문과 독서에 힘을 쏟는 일, 악을 없애고 선으로 나아가는 일, 격물과 궁리에서부터 책을 모으고 보관하거나 베끼거나 기록하는 일, 책을 아끼고 즐기는 일에&amp;nbsp; 대한 말 등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기가(起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amp;nbsp;&lt;/p&gt;&lt;p&gt;또한 음덕을 베풀고 분노를 뉘우치고 경계하는 일, 자신의 분수에 만족해하며, 곤란을 겪거나 궁색해져도 굳세게 맞서 나가는 법, 해야 할 일에 제대로 대처하고 온갖 사물을 순리대로 대하는 태도, 하늘의 뜻을 즐기고 자신의 운명을 알아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관한 모든 말은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보가(保家)’의 근본에 넣어야만 한다.&lt;/p&gt;&lt;p&gt;이 네 가지의 근본을 모두 합해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음 책상 위에 놓아두어라. 그리고 항상 잊지&amp;nbsp; 않고 읽는다면, 어찌 몸과 마음에 큰 이로움이 깃들지 않겠느냐? 너희들은&amp;nbsp; 힘써 실천하도록 해라.&amp;nbsp; - 다산시문집 제21권 / 서(書) -&lt;/p&gt;&lt;p&gt;&amp;nbsp;&lt;/p&gt;&lt;p&gt;다산은 무엇보다 죄인의 집안이었기에 자식들이 부디 집안을 일으켜 세우길 간절히 바랐다(齊家). 또 집안이 순탄하게 다스려지기를 바랐고(治家), 또, 오늘의 비극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는 집안이 되길 바랐고(起家), 마지막으로 집안을 보호하여(保家) 명맥을 이어가길 바랐다.&amp;nbsp;&lt;/p&gt;&lt;p&gt;이러한 다산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큰아들 정학연은 부친의 학문과 문학을 충실히 전수받아 다산학단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초반부터 시와 의술로 당대 이름을 떨쳤으며 추사 김정희, 신위, 서유구, 홍길주 등 당대 학계 및 시단에서 쟁쟁한 인물들과 폭넓은 교유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정학유는 구체적인 사물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특히 농업에 관심이 많았다.&amp;nbsp;&lt;/p&gt;&lt;p&gt;그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통하여 농민들의 생활을 제시하고 가르치고자 한 일은 부친의 가르침과 더불어 자신이 지향한 학문의 정신과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lt;/p&gt;&lt;p&gt;다산의 거가사본은 비록 200여 년 전의 글이라 하지만 가족과 집안에 대한 개념이 개인주의화되고 전통사회의 가치관이 허물어져 가는 상황일지라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정서적 유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은 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amp;nbsp;&lt;/p&gt;&lt;p&gt;오히려 팬데믹으로 세상이 뒤숭숭하고 불확실한 때 일수록 18년 유배 생활 속에서도 집안을 일으키고 가문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아들들에게 당부한 다산의 거가사본(居家四本)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의 가르침이 되길 기대한다.&amp;nbsp;&lt;/p&gt;...</description><author>우리신문</author><pubDate>2022-10-20 10:17:41</pubDat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