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유배 18년 자식에 대한 교육은 철저하였다. 왜냐면 죄인의 자식으로 낙인찍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낙담하고 어긋날까봐 노심초사하였다. 그래서 비록 땅끝 멀리 전라도 강진에 떨어져 만날 수도 볼 수도 없었으나 편지를 통해서 가르치고, 격려하고, 엄하게 꾸중을 하면서 원격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는 냉철한 학자이기 전에 자식 때문에 조바심 내던 애비였고, 망해가는 집안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가장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식들이 어떻게 해야 집안을 일으켜 세워 죄인 집안이라는 누명을 벗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지도 하였다. 그 가르침 중에 하나가 바로 다산이 자식들에게 집안을 세우도록 한 “거가사본(居家四本)!”이다.
주자는 “부드럽고 온순한 것(和順화순)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齊家제가) 근본이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勤儉근검) 집안을 다스리는(治家치가) 근본이고, 독서(讀書)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起家기가) 근본이며,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은(順理순리)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保家보가) 근본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집안을 다스리는(居家) 네 가지 근본이다.“ (중략) 효도와 우애, 자애 그리고 남편은 부드럽고 아내는 순종하며, 일가친척과 화목하게 지내고, 집안의 하인들을 잘 다스리는 일 등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齊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밭 갈고, 길쌈하는 법, 의복과 음식에 관한 가르침과 경계할 일, 농사짓고 가축 기르는 방법 등 전원생활에 관련된 말은 집안을 다스리는 ‘치가(治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뜻을 세워 학문과 독서에 힘을 쏟는 일, 악을 없애고 선으로 나아가는 일, 격물과 궁리에서부터 책을 모으고 보관하거나 베끼거나 기록하는 일, 책을 아끼고 즐기는 일에 대한 말 등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기가(起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또한 음덕을 베풀고 분노를 뉘우치고 경계하는 일, 자신의 분수에 만족해하며, 곤란을 겪거나 궁색해져도 굳세게 맞서 나가는 법, 해야 할 일에 제대로 대처하고 온갖 사물을 순리대로 대하는 태도, 하늘의 뜻을 즐기고 자신의 운명을 알아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관한 모든 말은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보가(保家)’의 근본에 넣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의 근본을 모두 합해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음 책상 위에 놓아두어라. 그리고 항상 잊지 않고 읽는다면, 어찌 몸과 마음에 큰 이로움이 깃들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힘써 실천하도록 해라. - 다산시문집 제21권 / 서(書) -
다산은 무엇보다 죄인의 집안이었기에 자식들이 부디 집안을 일으켜 세우길 간절히 바랐다(齊家). 또 집안이 순탄하게 다스려지기를 바랐고(治家), 또, 오늘의 비극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는 집안이 되길 바랐고(起家), 마지막으로 집안을 보호하여(保家) 명맥을 이어가길 바랐다.
이러한 다산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큰아들 정학연은 부친의 학문과 문학을 충실히 전수받아 다산학단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초반부터 시와 의술로 당대 이름을 떨쳤으며 추사 김정희, 신위, 서유구, 홍길주 등 당대 학계 및 시단에서 쟁쟁한 인물들과 폭넓은 교유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정학유는 구체적인 사물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특히 농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통하여 농민들의 생활을 제시하고 가르치고자 한 일은 부친의 가르침과 더불어 자신이 지향한 학문의 정신과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산의 거가사본은 비록 200여 년 전의 글이라 하지만 가족과 집안에 대한 개념이 개인주의화되고 전통사회의 가치관이 허물어져 가는 상황일지라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정서적 유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은 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팬데믹으로 세상이 뒤숭숭하고 불확실한 때 일수록 18년 유배 생활 속에서도 집안을 일으키고 가문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아들들에게 당부한 다산의 거가사본(居家四本)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의 가르침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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