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선생의 흔적을 찾아 강진 주변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드디어 9월의 마지막 토요일 월출산 정상 천황봉에 올랐다. 월출산은 한 가수의 영암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져 월출산이 영암에 있는 줄 알았는데 천황봉에 오르니 확연히 구분이 된다. 남쪽편이 강진이고 북쪽편이 영암이다. 1988년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바다와 부딪치면서 솟아 오른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산이다. 월출산의 정상은 천황봉(809m)이며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산 선생은 212년 전인 1806년 8월 17일 강진에서 월출산에 올라 그 비경과 기암들을 높다란 뿔로 표현한 시를 남겼다.
월출산 정상에 올라서 8월 17일 (다산 정약용)
산이 허공에 뿔같이 우뚝 솟았으니 /
岧嶢一角揷晴空
남쪽 벌판에 웅장한 바위들 /
平鎭南邦石勢雄
청해는 두힐이 다스렸고 /
豆肹提封淸海內
모라의 성곽은 물안개에 가리운다 /
乇羅城郭暮煙中
손자의 도움받아 바위에 올라 휘바람 부나니 / 巖阿自發孫登嘯
천지간 원적이 가난하다 말할자 누구뇨 / 天地誰憂阮籍窮
창덕의 모난 술잔은 어디에 있기에 /
昌德觚稜何處是
적상의 서운은 붉음을 가리울까 / 赤裳遮斷瑞雲紅
강진과 다산, 강진문헌연구회, 양광식(역), 173p, 1997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온지 5년이 되면서 제자들과 함께 피폐한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듣고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를 위하는 일편단심이라도 나라에 알릴 수도 없고 그 실상을 그림으로 바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일들을 시로 엮어 놓았다. 다산은 2,500여 수의 시를 통해서 자연계에서 강자와 약자간의 생존경쟁에서 빚어지는 대립관계를 바탕으로 일반 백성들의 슬픔과 지배층의 횡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가 많다. 월출산에 대한 다산의 글은 또 있다. 다산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알아볼 수 있는 글로 ‘신령스러운 돌[靈石]에 대한 변증’으로 영암 월출산에 신령스런 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거기에 대한 글을 쓴 것으로 흔히 백성들이 미신으로 믿고 있는 것을 과학적인 사고로 명쾌하게 설명한 글이다.
신령스러운 돌[靈石]에 대한 변증(다산 정약용)
월출산에 신령스러운 돌이 있다. 그런데 그 돌의 형상이 높고 크기가 큰 집의 등마루와 같으나, 사람 하나가 그 돌의 한쪽에 서서 흔들면 그 돌이 한번 움직이고 중지한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이 돌 위에 서서 흔들더라도 돌은 한 사람이 흔들 때와 똑같이 한 번 움직이고는 더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때는 도리어 한 번도 움직이지 않기도 하는데, (중략) 무릇 물건은 무거워서 아래로 떨어지려는 성질이 있는 것이므로 땅에 닿은 부분은 적은데다 상체의 중력이 좌우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서 쓰러져 있게 된다. 나는 그 돌이 신령스러운 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출처 : 다산시문집 제12권, 한국고전번역원, 윤태순. 양홍렬. 이정섭 (공역), 1983
이처럼 다산은 우리들의 실생활에 있어서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가 없다. 월출산 정상을 다녀와 다산 선생께서 쓰신 시와 글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과 당시 다산의 감정을 생각해 보았다. 먹을 만큼 살고 누릴 만큼 누리고 살지만 서로의 불신으로 의가 사라진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다산시대 백성들의 경제적 피폐한 상황이 오늘날 정신적 피폐함과 대비되면서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오늘이 아닌가 생각된다. 월출산 정상에 올라 실리주의 앞에 의리가 무색해진 오늘의 세태를 성찰하며 다산정신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 소중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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