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분을 직접 뵌 것은 11살이 되었던 국민학교 4학년이던 초여름이었다. 당시 정년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을 위해 몇일을 두고 학교 강단에 서서 ‘스승의 은혜’를 목청껏 연습을 했었다. 지금도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날은 오랜 세월 작천국민학교에 헌신하신 김두옥 교장선생님 퇴임식 때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합창복이 따로 있지 않던 그 시절 나는 같은 마을에 사는 동네 언니에게 흰 블라우스에 남색치마를 빌려 입고 여름이 밀려드는 작천초등학교 강단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그날은 초여름이 한참 무르익던 6월 무렵이었다. 빌려 입은 흰색 블라우스가 구겨질까 내내 신경이 쓰이던 나였기에 단상에 오르던 그 분은 작천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비넥타이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기다림과 무더위에 지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더블남색스트라이프 자켓에 흰색 와이셔츠, 나비넥타이는 당시 작천면에서 보기에는 낯선 광경이었다. 한눈에 봐도 그에게서는 ‘서울사람’이라는 세련미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분은 평생을 작천국민학교에 운동장을 만들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강단을 짓고 등등의 공적을 기리는 김두옥 교장선생님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기 위해 강단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낯선 초여름 신기루처럼 작천에 낯선 모습을 남기고 떠난 이가 ‘정행남’이라는 분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작천초등학교를 거쳐 작천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행남’ 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졌다.
당시의 나는 항상 오빠의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오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기 위해 수업이 일찍 끝나는 오후시간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았다. 해가 늬엇늬엇 월출산 천왕봉을 넘어갈 무렵까지 석양을 등지고 앉아 랭보도 보고 보들레르라는 이름도 외우게 되었다. 당시엔 이해하려 해도 잘 알 수 없었던 조이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읽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책 표지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방되지 않았던 도서관의 출구도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하나 만들어 두었다. 당시 도서관 청소를 담당 도맡아 했기 때문에 창문의 걸쇠를 열어두었다. 다른 교실과 달리 도서관으로 연결되는 문을 가지고 있던 4학년 1반만의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허물고 신축교실을 짓고 있어 우리반 교실만 도서관 옆 교실을 사용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래되고 낡은 창문 하나를 봐 두었다가 헐거워지는 문고리를 살짝 하나 빼 두곤 했다. 광주나 강진읍 내에 살던 학교 선생님마저도 모두 떠난 빈 교정에 나는 도서관에 들어가곤 했다.
도서관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말끔한 의자나 책상이 놓여있지도 그렇다고 시원한 에어컨이 가동되는 때도 아니었다. 가끔은 무더운 태양 빛에 등줄기에 땀방울이 주르룩 흘러 내리도 하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덜컹덜컹 낡은 도서관에 음산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곤 했었다.
그런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 학교 과학반에서 실험을 하는 오빠를 기다리던 나는 도서관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던 나에게 몰래 숨어 들어온 내게 김두옥 교장선생님이 찾아오셨다. 교장선생님은 간단히 창문으로 들어왔느냐? 열쇠를 찾아다 주시겠다 하시며 지나가는 말처럼 이 책을 보내주신 준 사람도 책을 좋아했었다고 했다.
김두옥 교장선생님이 처음 교직에 들어서고 첫 부임지가 작천국민학교였다고 했다. 당시는 6.25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때였다고 했다. 그리고 정행남 선생은 당시 그의 첫 담임시절 제자였다고 했다. 책 한권이 귀한 그 시절 그 어린 제자는 책 한권을 보기 위해 밤새도록 산길을 걸어 책이 있던 병영초등학교 선생님 집을 찾아 책을 빌려왔고 다음날이면 김두옥 선생님과 제자는 등사기에 책을 베껴 쓰고 다음날 날이 어두워질 무렵 책을 반납하러 다시 병영면에 다녀와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가 졸업한 이 학교에 책을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고 후배들에게 책을 원없이 볼 수 있도록 보내주는 분이라 했다.
그리고 너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은 시간이 정말 순간순간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듯하다. 누군가 말하길 세월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를 헤아리는 숫자만큼 이라더니 처음 시간을 인식한 그 순간부터 지금 나의 세월의 속도는 지금 내 나이의 속도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 분과 전화통화를 한 후 한참이 지났는데도 내가 찾아 볼만한 때인가 싶어 차마 찾아 뵙지를 못하였다. 시간도 여유가 없다는 핑계와 주말은 그 분이 연세가 있으셔서 따로 나오라고 말씀드리기도 어렵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도이치뱅크 신입사장이 한국에 왔다고 독일아줌마클럽 (GERMANY CLUB)에 초대를 받아 용산 근처에 가게 됐다. 모임이 끝나고 시간의 여유가 생긴 나에게 지난 전화통화 후 알게 된 정행남 치과 근처임을 알았다. 회사에 휴가까지 신청하고 온 일정이었기에 미리 저장해둔 번호를 눌렀다.
정행남 원장은 단 한번 전화 드린 나를 용케 기억해 주시고는 곧장 찾아오라 말했다. 다행이 난 아줌마들의 수다를 피할 수 있어 잽싸게 거길 빠져나올 수 있는 핑계를 대고 택시를 타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였다. 정행남 치과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낡고 비좁았다. 빌딩 건물에 익숙한 나에게 오래된 상가 건물의 계단은 낯설었다. 그러나 가슴이 두근두근 조마조마 했다.
어릴 적 보았던 줄무늬 스트라이프의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던 그분일까? 혹시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Pastoral Symphony)처럼 줄리앙처럼 아니 본 만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짧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의 편린들이 다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복도를 걸어 올라가야하는 낡은 건물의 3층에 그 분의 병원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익숙한 나로서는 호흡조절이 필요했다.
그 병원에 들어섰다. 전자알림음이 아닌 풍경이 매달려 있었다. 그동안 제가 너무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인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다.
열 한 살의 내가 서른이 넘어 나비넥타이의 그는 할아버지를 뵈었다. 그러나 병원 가득 낡은 책들이 가득했다. 그는 환자가 있는 도중에도 중간중간 편하게 있어라? 차를 한잔 주랴? 화장실은 저쪽에 있다. 오늘 시간은 괜찮으냐? 점심을 안 먹었으면 배는 고프지 않느냐 등등을 계속 물어왔다.
나는 무조건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넘어설 무렵 그는 멀리 가려는 사람처럼 코트까지 챙겨입고 용산의 오래된 골목을 따라 그의 단골집으로 찾아 나섰다.
정행남 원장님은 그 날의 방문에 무척 기뻐하고 보람 있다 말하였다. 그분의 말씀은 전국에 책을 35만권을 기부했다고 한다. 도서관이 없는 곳에 도서관을 세워 책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하니 단순한 금전적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감동이 가득차 오르는 것 같았다.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란 분이여서도 아니고 같은 동년배도 아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듯 했다
일본의 정행남씨과 한국의 정행남. 서로 다른 장소이지만 나이까지 같은 두 정행남선생님은 기억해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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